9월 10, 2016

세속화와 계몽

결국 종교와 철학의 격렬한 논쟁은 막다른 골목에서 끝났는데, 이는 두 진영이 분리된 문화 영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 이제 무엇보다도 문화 상품의 지위로 추락한 종교의 중립화는 객관적인 진리를 구현한다는 종교의 총체적 요구와 모순되며, 동시에 그 요구를 약화시켰다. ...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의 이름으로 종교를 공격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그들이 무너뜨린 것은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형이상학과 객관적 이성 개념 자체, 그리고 고군분투하는 철학이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1)

흠... 개인적으로 '세속화' 논의가 우리나라 맥락에서는 별로 적실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서양에서 근대를 지나며 '이미' 세속화를 경험한 종교(특히 기독교)를 '전근대적' 사회에서부터 시작한 입장이니, 서구의 세속화 논의 중 많은 것들이 우리 현실과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아귀가 맞지 않는데 '썰'들만 많아지면, 썰들이 이제 유사 현실이 되어 마치 예전부터 그랬던 양 허위의식을 산출한다.

그러함에도, 호르크하이머의 위의 언급들을 곱씹어볼 만하다. '계몽'을 비판하는 것이 그저 세속화 이전, 계몽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이런 구닥다리 질문을 여전히 (의식하든 안 하든) 부여잡고 있는 나 같은 보수적 신앙인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하다.

만에 하나, 완전 세속화 이전, 즉 근대 직전 혹은 초기 근대의 서구적 상황을 완벽히 복원한다 하더라도 과연 이후의 역사는 '계몽'의 격동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가능하지 않다면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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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르크하이머, 박구용 역, ≪도구적 이성 비판≫, 35-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