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5, 2017

유언에 대하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유언(遺言)’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비로소 효력을 발생하는 말이다. 유언한 자가 살아있을 때 유언은 제아무리 거창한 내용이 들어있다 하더라도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첫 언약 때의 범한 죄는 모두 땅에서 육신으로 말미암은 것들이다. 율법이 최종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목표(=믿음으로 말미암는 참 생명과 참 의)는 육신이 연약하여 육신으로서는 이루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육신에서 나지 않은 의(義)만 율법의 정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첫 언약 때 범한 죄들은 첫 언약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정죄되지 않는 의(義)로라야 사할 수 있다. 흠 없고 무죄한 피만 속죄의 능력이 있다. 자기 죄로 흘린 피는 결코 다른 사람을 속죄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피를 흘려도 유구무언(有口無言)일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린 피(죽음)는 호소한다. 왜 그러한가? 이 피는 무죄한 피기 때문이다. 이 억울함의 호소, 이것이 속죄의 외침인 것이다. 억울하게 죽임 당하신 어린양만이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 5:6). 첫 언약 전에 죽은 흠 없고 순전한 염소와 송아지는, 그 흘린 피가 출애굽 광야 이스라엘의 죄를 대속했듯이 새 언약을 위해 죽임 당하신 예수의 피는 모든 옛 언약의 범죄들을 속한다. 그러므로 ‘첫’ 언약은 사실은 첫 언약이 아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사실은 첫 언약의 염소와 송아지보다 ‘먼저’요, ‘근본’이다(골 1:18, 계 3:17). 일찍이 죽임당한 어린양이 없다면 염소와 송아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죽임당한 자의 외침, 하나님의 뜻대로 죽임당한 후에야 효력을 발생하는 호소, 이 호소에 많은 열매가 들어있다.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의 믿음이 셋이라는 열매가 맺힌 한 자리를 내어놓았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알의 밀이 되시어 땅에 떨어져 당신의 생명을 많은 이들을 위해 내어주셨다. 이로써 많은 열매들, 생명들이 이제 일어나게(=부활하게, 원어로 부활은 문자적으로 ‘일어나다’의 뜻)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