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9, 2017

세상 죄를 지는 하나님의 어린양

어린양은 자기 소원이 없다. 제사자가 그를 바치는 그 소원, 그 뜻이 그를 지배한다.

제사자는 어린양에게 안수함으로써 자기와 이 제물을 동일시하는데, 이는 마치 자기가 어린양을 뜻대로 인도하는 것처럼 자기 역시 자기의 소망이 없이, 저항할 수 없이 ‘죄의 소원’에 이끌림을 시인하는 것이다. 나의 소원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육신일 뿐이다, 죄의 소원이 나를 이끌어간다, 이것이 바로 제물을 드리는 자의 고백이다. 삶에 대한 욕망, 이것이 나를 움직이는데,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종 되었던 집 ‘애굽’에 있는 곤고한 자다.

그러므로 나를 이끄는 소원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죄인가, 하나님인가. 어린양이 세상 죄를 질 때 그는 온전히 하나님이 부리시는 자가 된다. 나는 어느 대상에게든 ‘부림을 당하는 자’일 뿐임을 시인해야 회개가 가능하고 그래야 구원이 가능하다. 나는 주인이다, 나를 부리는 자는 아무도 없고 오로지 내 소원과 욕망이 나를 구성한다, 모든 것은 내가 행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회개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핑계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핑계치 못함’이다(롬 1:20, 2:1). ‘나’와 죄가 따로다, 죄를 벗으면 내가 주인이다, 이런 뜻이 아니다. 내가 주인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함을 알고 오직 탄식함이 하나님의 자녀가 나타나게 한다. 나는 의나 불의, 둘 중 하나의 종만 될 뿐이다. 바로냐, 여호와냐. 바로는 결코 이스라엘을 자유케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옭아맨다.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듯이, 의든 불의든 종된 자는 이로써 먹는다. 그러나 소 안에는 소를 부리는 자가 산다. 소는 그의 인생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소가 소임을 멈추지 않고 소의 생리가 있다(소의 생리 > 소를 부리는 사람의 뜻). 우리에게도 소위 ‘내 인생’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으나, 이것이 존재함이 곧 내가 죄의 종이 아님을 증명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