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우리시대의 뿌리를 찾아서]식민지 조선의 기독교, 국가주의를 받아들이다
[신사참배 80년, 이젠 회개다] “신사,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치욕의 선언
신사참배를 찬성한 쪽의 논리는 항상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행사다’였다. 여기에 깔려있는 전제는, 교회가 국가행사에 동참하는 것은 (자랑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 권력에 대한 경계심이 별로 안 나타나있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교회가 이러한 관점으로 권력의 일부를 이룬 것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이 관점을 이의 없이 수용하는 경우, 신사참배를 비난할 근거는 유일하게 ‘민족주의’밖에 남지 않는다. 조금 더 보태자면 일제의 국가 권력 행사는 불의했다, 전쟁 세력이다,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물음은 교회가 국가 행사에 힘을 보태고 정당화해주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자면, 신앙이 민족과 상관 있는가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저항적 민족주의를 굳이 비난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통상적인 제국주의 피해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기독교 선교를 한 나라들(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등등)이 식민지 침탈의 주체가 아니었다는 특수 상황에 처해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한 저항적 ‘기독교’ 민족주의가 가능한 것이다. 어떤 의미로 이는, 아관파천을 감행하던 당시 고종 및 황실 그리고 집권세력들의 마인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以夷制夷’의 전략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앞의 夷는 ‘선하고 우월한’ 夷라는 게 좀 독특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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