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 2021

모빌리티, 제국

제국은 '선을 넘어야' 가능해진다.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가진 집단을 굴복시키고 이를 넘어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집단을 굴복시켜 하나의 다스림 안으로 집어넣을 때 제국이 성립된다. 이러한 제국이 발전하려면 (기술)문명이 발달해야 하는데, 그 핵심은 선을 넘을 수 있는 기술력이다.

선이라는 것은 항상 물리지 않으려는 힘과 함께한다. 그러므로 선을 넘는다는 것은 두 힘이 필요한데, '무력'과 '속력'이다(= 모빌리티). 선을 버티고 있는 저항을 분쇄할 수 있는 무력, 그리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속력. 이것이 될 때 제국이 완성된다. 제국은 우선 내부적인 서열 정리가 끝나서 내부적인 다스림이 통일되어야 가능하다. 내부의 서열 정리가 끝나면 밖을 향하는 것이 제국의 첫 발걸음이다. 이것은 처음에는 계층을 공고히 하는 것, 계층간 선을 긋는 것으로 시작이 되지만 그 궁극은 결국 신분 간 선들조차 철폐되는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인 힘(단지 무력이 아닌)의 논리로 회기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 세력은 서로 간 선을 무너뜨리고 자기가 더 이상 뻗어갈 수 있는 선에까지 이르려 한다. 그래서 대륙마다 역사에서 전국(戰國) 시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전국 시대가 끝나고 통일이 되면 비로소 억압에 바탕한 평화가 찾아온다. 성경의 '철병거'는 무력과 속력을 함께 갖춘 '기계'를 대표한다. 더 이상 뻗어갈 수 없는 선은 대개가 지리적 경계다. 큰 물이나 큰 산이다. 중국 대륙, 지중해 중동의 대제국들은 항상 바다까지가 경계였다. 일본 역시 그러하고. 한국도 그러하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가 도래하면서 바다가 더 이상 경계로 작동하지 않은 때가 되었다. 그래서 제국이 자기 안에 큰 물, 즉 바다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이어지는 해양 제국의 시대다. 여기서 무력과 속력은 '범선'이라는 기계에 담기게 된다.

문명과 산업은 항상 제국에서 발전하고 제국에서 융성한다. 그러므로 문명은 항상 약탈과 전쟁과 함께한다. 약탈과 전쟁, 선을 넘는 일을 통해 기계가 발달하고 생활이 윤택해진다. 그러므로 군대와, 상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것은 제국의 소산이다. 왕/귀족(군사력)과 상인들은 모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자리이며, 이런 자리가 제국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국적 발달과 발전은 사실상 모든 통치와 권세에 내재해 있다. 이 말인즉슨, 제국뿐 아니라 모든 통치와 권세에는 제국적인 불의와 억압이 생길 기미가 이미 있다는 뜻이다. 선지자들이 비판한 것은 이스라엘의 죄인데, 그 죄들은 제국들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하기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모든 민족들, 특히 제국을 이루며 이웃 민족들을 수탈하는 민족들을 정죄한다. 이것은 보편윤리에서 특수윤리로 가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특수에서 보편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수를 보편으로 인식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 즉 보편적인 분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근대 자유주의의 고갱이는 개인끼리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즉, 개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대우한다. 주권 가진 나라로 대우한다. 이는 권력이 개인에게, 비유하자면, 제국적 침탈을 자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