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부러움=심신(心身)의 고통’이라는 진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모든 부러움에 고통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차가 있겠고 집단차도 있겠다. 게다가, 한국 문화가 이런 쪽 감정에 더 특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러움=고통’ 자체를 얼토당토않다고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사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쿨하기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지만, 나는 이 사람들도 ‘사촌 토지 매입 복통’을 느끼는 것을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러면 부러움이 부러움을 넘어 시기, 질투까지 나아가는 계기는 무엇인가? 부러움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지/인내하지 못하고 험담, 수동 공격, 자기 비하, 열등감 내면화 등을 통해 ‘해소’하려고 할 때이다.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배가 아픈 고통을 참으면서 ‘축하해!’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부러움이 시기나 질투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겸양(謙讓)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을 겸양으로 부르려면 ‘부러움으로 인한 고통을 해소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의롭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즉, ‘부러움 때문에 생기는 모든 고통은 험담, 수동 공격, 자기 비하, 열등감 내면화 등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의(義)이며, 참고 인내하는 것은 불의(不義)’라는 계명이 있어야 겸양이 된다.
그러나 과연 ‘사촌 토지 매입 복통’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소하는 게 선(善)이며 의(義)인가? 적어도 성경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복통을 참으면서 복을 빌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 선이며 의다. 성경, 특히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의 권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경건을 실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침이 무엇일까? 바로 ‘인내’다. 인내가 없으면 희락과 평화와 긍휼과 안식은 오지 않는다. 각 사도는 복음을 풀어내는 어법이 각각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복음을 전한다 하더라도 인내를 강조하는 데서는 똑같다.
(눅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약 1:3~4)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부러운들 어떠하리! 그래서 고통스러운들 어떠하리! ‘기부니즘’을 이기고 고통을 참고 인내하여 축복하고 평안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인 경건의 시작이다. 고통 없애기, 이것은 우리 의(義)가 아니다. 또, ‘고통하는 나’가 곧 나 그 자체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