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 2010

깨물고 싶은 그대

오래된 글

아이들이 부쩍 컸다. H는 물론이려니와, Z도 이제 제법 힘이 세다.

딸래미들이 아주 아기였을 때, 기기는커녕 뒤집지도 못했을 때를 기억한다. 그때는 정말 부스러질 것 같았다. 어여쁘고 귀여워서 들어올리면, 너무 가벼워서 그대로 손을 놓으면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그맣고 그렇게 몰캉몰캉했었다.

요것들의 단풍잎 같은 손과 지우개 같은 발, 그리고 동글동글한 몸을 볼 때마다 그때나 지금이나 드는 충동이 있다. 바로 '터트리고픈' 충동. 물론 정말 터지면^^ 안 되기에, 부스러지고 날아갈 것만 같았던 아기 때는 감히 나의 충동을 표현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제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혀도 두어 번 숨 들이마쉬며 목놓아 울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뛰어다는 지금, 이제 난 내 충동을 마음껏 해소하고 있다. 뛰어다니는 요것들을 잡아서 깨물고 조르고...^^

내 뇌리에는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다, 내가 얘들 만했을 때 내 얼굴을 깨물고 내 볼에 거칠거칠한 수염이 난 턱을 비비시던 아부지의 감촉과 표정이... 나는 그때 지금 얘들처럼 아부지를 밀어내고 짜증을 부리며 울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무려 삼십 년도 더 전의 일인데 마치 삼십 분 전의 일처럼 생생하다.

분명한 것은, 이 아이들이 뭔가 '받는다'는 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물어봤다. "H아, 사랑하는 건 뭐지?" H 왈, "사랑해 하면서 아꾸까('안아 줄까?'의 변형으로 '안아주다'의 뜻)하고 뽀뽀하고 하는 거~" 뭐 대충 이런 대답을 들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아이들이 사랑을 체험하는 건 '받는 방식으로' 체험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어느 때까지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 느낌, 촉감'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적어도 어느 때까지는 아이들에게 꼭 '애정 접촉'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이건 사실 새삼스러운 발견이 아니다. 평범한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내용은 부모의 입장으로 가면, 적어도 어느 때까지는 '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내리사랑은 한편으로는 인내와 절제가 요구되는 자기 부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귀여움(?)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의 결과물이다. 깨물고 조르는 것으로 표현되는 터트리고(?) 싶은 충동은 후자가 가끔씩 폭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그런데 왜 무지무지 귀엽고 사랑스러우면 깨물고 조르는 방식, 즉 존재를 훼손하고 억압하는 쪽으로 움직여가는 것일까? 왜 사랑이 극에 이르면 일종의 공격이 되는 것일까? 물론^^ 어느 부모도 자식을 깨물어 다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분명한 것은 귀여운 존재에 대한 폭주는 '깨물기', '조르기'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냥 감탄하고 그냥 거리를 두고 바라보지 못하고 달려들어서, 내게로 잡아채어서 마치 내 안으로 집어넣을 듯 그렇게 깨물고 조르는 것이다.

의식을 넘어서 몸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주는 사랑의 결국은 몸의 고갈이라는 것을. 사랑은 무한하지 않다. 물론, 사랑을 무한하게 지향할 수는 있으나, 사랑은 연료를 필요로 한다. 평생 자식을 사랑한 부모는 결국 쭈글쭈글한 손과 발, 그리고 구부정한 허리를 가지게 된다. 젊은 날 팽팽하고 탄력있던 몸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 들어있다 -- 사랑을 위해 연료로 쓴 것이다. 몸은 아는 것이다, 내 앞의 요놈이 나를 고갈시키는 존재라는 것을...

이런 부모 몸의 쭈그러듦을 바탕으로 자식 몸은 커져간다. 자의식이 생기고 부모를 타자로 인식하게 될 때 자식은 알게 된다, 자기 몸은 사실 처음부터 부모에게서 비롯됐다는 것을. 이런 자의식이 생기면 '사랑의 폭주'는 자식에게 부채의식으로 다가오게 된다. 여전히 깨물고 조르는 부모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식에게 자기가 투여한 거대한 지분을 상기시키는 부모다.

아부지는 내가 신학교 들어간 뒤로는 내 이름을 잘 부르지 않으셨다. '구전도사-구강도사-구목사'로 내 호칭은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호칭 방식은 우리나라 감투 문화의 소산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 안다, 깨물고 조르고 수염 난 턱을 비비시던 아부지가 사랑의 폭주를 그렇게 제어하고 계시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서로 허그를 하는 것도 매우 어색한 사이라서 마지막으로 서로 허그한 기억이 한 유치원 때 정도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난 안다, 여전히 아부지께는 언제나 폭주할 위험(?)이 있는 사랑이 항상 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