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schoenen을 aan해야 돼!”
“○○! 먼저 brood를 opeten해!”
우리 아이들 한국말 말투다. 처음 문장은 '아빠, 신발을 신어야 돼', 두번 째 것은 '○○야, 빵 먼저 다 먹어라'다.
아이들 한국말 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한국말을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건 분명하다. 아이들은 부모인 우리가 하는 한국말을, 단어뜻을 모르지 않으면 척척 잘 알아듣고 자기들끼리도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하니, 한국어 자체를 습득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얘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분석해보면, 네덜란드어, 한국어, 이렇게 언어의 버전별로 각 언어에 고유한 요소들(예를 들면 어순, 한국어 같으면 굴절어적 특성, 네덜란드어 같으면 관사 등의 탈착)은 잘 보존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독립된 의미를 표현하는 건 어떤 언어를 택하든 입에 붙어있는 게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자기 입에 붙어있는 표현을 다른 언어를 통해 표현한다 해도 그 언어의 논리와 어법에 최대한 밀착시켜 발화한다. 위의 예들처럼 말이지. 예를 들면 한국어를 말하면서 네덜란드어 동사를 쓸 때는 항상 원형만 쓰지, 결코 네덜란드어의 분사를 쓰지 않는다. 원형에 한국어 어미를 붙여서 시제나 어조를 표현한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그냥 감으로' 이렇게 한다. 그런데 이게 가만히 보면, 우리말에 한자어를 쓰는 방식과 일치한다. 물론, 네덜란드어 문장을 말하면서 중간에 한국어 표현을 섞어쓸 때도 많다, 내가 지금 다 기억을 못하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있다보니, 새삼 현대 한국어를 돌아보게 되었다. 당장 내가 이 포스팅에 쓰는 한국어만 분석해보더라도 입에 붙은 한자어들을 한국어 고유 어법에 녹여낸 표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냔 말이다. 'Schoenen을 aan하다' 식의 조어법이 우리말 표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냔 말이다. 한글 전용으로 써서 그렇지, 이 포스팅에 지금까지 쓴 어휘들을 한자 전용(+영어 노출)으로 바꾸면 아마 우리 아이들이 위에서 내뱉은 문장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시조 중 하나인 이조년의 '다정가'를 함 들여다 보자.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 제
一枝春心을 子規ㅣ야 아랴마난,
多情도 病인 냥 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이 시조를 순우리말로 풀어보면 다음 정도가 될 것이다.
배꽃에 달이 하얗고 미리내는 세 번을 지나갔는데(이건 아마 중의적인 표현일 것이다. '삼경'은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한 조각 봄의 마음을 두견새는 알랴마는
정 많은 것도 병인 양, 잠 못 들어 하노라. (여기서 '정'과 '병'에 대응하는 순우리말은 없다.)
사실, 시조라는 게 '선비'들이 한시로는 2프로 부족하고, 그렇다고 우리말로만 노래를 만들기에는 3프로 부족해서 나온 문학 양식이 아닌가! [물론 내 사견이다.] 옛날 한학을 하던 선비들은 아마 우리 아이들이 한국말하는 것처럼 한국말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배꽃'보다는 '리화'가, '달이 하얗게 떴다'보다는 '월백했다'가, '미리내'보다는 '은한'이 이 사람들 입에 붙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한국어는 많은 부분, '뫼'를 대신해 '산'이, '가람'을 대신해 '강'이 입에 붙은 표현으로 채택되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어휘들은 산이나 강만 있지, 이 단어들을 대체할 뫼나 가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언중(言衆)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현대 한국어를 지금의 상태로 형성시킨 '언중'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나를 자꾸 곱씹게 된다.
난 요즘, schoenen을 aan하려고 하는 아이들에게 신발을 신긴다. 그리고 언젠간,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려 한다. '우리말'도 알아야겠지만 '韓國語'도 알아야 제대로 된 한국어 언중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2019-05-06
현재 진행형... ㅠㅠ
이 글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