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 기간에 쓴 글】
일단, 영문 기사 하나.
Why Voting for Donald Trump Is a Morally Good Choice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웨인 그루뎀이라는, 유명한 조직신학자이다. 기사에 보면, 렘 29:7을 인용하면서 그걸 ‘미국의 welfare’를 지지하는 근거 구절로 인용하는데, 이런 식으로 성경을 주석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기사를 화두로 삼아 드는 생각이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소위 ‘건국 신화’에 기독교가 습합되어 있기에 참 별로라는 것이다(나라 자체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차라리 단군 신화는 신화일 뿐이라고 객관화라도 시킬 수 있지만, 건국 신화와 자기 신앙을 동렬에 두는 건 신앙을 왜곡시키기 십상이다. 이러한 사정은 기독교적 유럽 문명 일반에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소위 ‘본토’ 크리스텐돔의 장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처럼 ‘이방인들의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신앙을 가지게 된 장점 역시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이방인들의 땅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크리스텐돔 제국을 동경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건국 신화를 신앙에 습합시키는 그 논리를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사람들이 요즘 왕왕 보인다.
그러나 신학 동네 용어를 활용해서 설명해보자면, 개별 국가의 성립은 ‘우연’의 영역에 속한다. 이것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나지만, 우연은 우연하게, 필연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를 전제한다. 전통적으로, 예정론의 영역 말고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필연적으로 필연이라 부를 만한 일이 별로 없다(그래서 일반적으로 예정론은 따로 다룬다). 미국, 또 한국이라는 국가의 성립은 하나님의 섭리에 속하여 있지만,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다른 모든 일보다 더 섭리적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
역사가 그렇고 또 성경에서도 그렇듯이 나라는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자기 나라에 자기 신앙을 거는 것은 나라 자체를 애착한다기보다는 자아(自我)의 요소 혹은 큰 자아를 애착하는 것이다. 즉, 내 생존과 복지에 대한 애착, 죽을까 하는 두려움 등이 내 나라를 ‘하나님이 반드시 보우하셔야 하는 나라’로 여기게 한다.
미국 시민으로서 이러저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야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지만, ‘크리스찬이라면 ~해야한다’라는 식의 윤리적 필연을 주장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실제 많은 경우, 윤리적인 문제는 굳이 ‘크리스찬’ 내지는 ‘기독교적’이라는 정체성을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윤리성을 따지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십계명만 하더라도, 첫 돌판 말고 둘째 돌판은 웬만한 사회에서는 일반 윤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는 꼭 그렇지 않다. 정치적인 문제를 윤리의 문제, 더 나아가서 신앙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자칫 신화적 사고로 흐르기 십상이다. 기독교적 건국 신화는 성경이 일관되게 묘사하고 있는 국가의 ‘야수성’(신구약 일관되게 국가는 야수, 짐승으로 비유된다)을 가리게 된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국가를 반려 동물이 아니라 야수를 다루듯 다루어야 한다.
이 글을 보라.